주혜린 — Hwayoung Lee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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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혜린: 이세계 피크닉(裏世界ピクニック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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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경험하지 않은 과거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?”
(Fred Davis, 『Yearning for Yesterday: A Society of Nostalgia』, 1979)

사회학자 프레드 데이비스(Fred Davis)는 자아에게 불안과 불만이 있을 때 과거가 떠오르므로, 노스탤지어는 이러한 부정적 상황과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감정이라고 말했다. 노스탤지어의 개념을 현재와 연결된 것으로 그 의미를 확장한 것이다. 이와 같이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지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결핍과 불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과거의 기억을 불러들이는 행위로, 불러들이는 과거는 정확한 과거의 한 시절이 아닌 현실에서의 결핍이 충족된 형태인 것이다. 자아가 선택한 ‘낭만화' 과정을 거친 셈이다. 보다 넓은 시선으로 본다면, 노스탤지어는 미래를 전망하는 감정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, 현재의 감정이 해소된 미래로 연관시킬 수도 있겠다.

이에 노스탤지어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한 다섯 단계의 시리즈물 기획하여 종이 인형을 활용한 짧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였다. 이때 루이스 캐롤의 『이상한 나라의 앨리스』와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『오즈의 마법사』 속 이야기 전개 방식 및 캐릭터 구성 방식을 매시업하였다.

첫 번째 단계는 ‘시작'이다. 현실의 불안과 불만을 낭만화하는 단계로, 숲을 걷던 주인공이 강아지와 함께 의문의 문을 발견하고 문 너머의 세계로 향하게 된다. 이때 『이상한 나라의 앨리스』에서 토끼를 따라 토끼굴로 빠진 앨리스가 시간과 위치를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장면과 『오즈의 마법사』에서 도로시와 토토가 회오리 바람에 실려 오즈의 세계로 떨어지는 장면을 리믹스하였다.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 『이누야샤』 속 키라라, 『웨딩피치』 속 통통, 『세일러문』 속 루나와 같이 주인공 옆에 자리잡은 작은 친구를 첨가하여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극대화하였다. 이후, 주인공은 두 번째 단계인 ‘낯섬'에 도착하는데, 이 단계는 그리움이 고조되기 직전의 단계로 이세계 속 친구들을 만나 여유로운 티 타임을 즐긴다. 『오즈의 마법사』 속 도로시와 토토가 허수아비, 양철나무꾼, 사자를 만나 함께 여정을 떠나는 것처럼 주인공은 덩치는 크지만 순하고 말수 적은 친구(나무), 멀대같이 큰 키에 성격 좋은 친구(꽃),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친구(버섯)을 만나 모험을 떠날 준비를 한다. 디즈니 애니메이션 『백설공주』 속 심술이, 『신데렐라』 속 고양이 루시퍼와 같이 주인공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첨가하여 유년시절 친구 관계에서 겪었던 미묘한 갈등 혹은 주인공이라면 마땅히 풀어야 할 숙제 같은 클리셰로 작용하게끔 하였다. 이어서 세 번째 단계는 ‘수긍'으로, 그리움이 고조되어 완전히 수긍하는 단계이다. 주인공은 동료들과 함께 그리워하던 것 속에 푹 빠져 즐기는데, 푸드코트 쇼케이스에서 볼 법한 음식 모형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곳에서 마음껏 먹는 장면을 담았다. 네 번째 단계는 ‘환희’로, 그리움이 최고조로 치닫아 불안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단계이다.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온갖 취향들 사이를 부유하던 주인공은 불현듯 ‘현실은 가상과 다르다'는 것을 깨닫고, 그 순간 이세계로 향했던 문이 다시 열린다. 문 너머에 있을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한 편, ‘그 현실도 언젠가 그리워 할 과거가 되겠지?’라는 생각으로 용감히 문을 넘어간다. 마지막 단계는 ‘수용'으로, 그리움을 받아들이고 마주한 현실을 인정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이다. 주인공이 좋아하는 공간에서 이세계의 동료들을 추억하는데, 과거는 과거의 시간에 그대로 둘 수 밖에 없지만 그리워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포한다.

‹이세계 피크닉(裏世界ピクニック)›은 언제든 들를 수 있는 이세계의 문을 열어둠으로써 볕이 좋은 날 떠나는 피크닉처럼 노스탤지어의 순간들을 즐기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다. 어쩌면 노스탤지어는 냉혹한 현실 세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닌, 현실 세계를 지혜롭게 이겨낼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. ‘일보후퇴(一步後退) 이보전진(二步前進)’과 같이 ‘한 걸음 후퇴한 것은 두 걸음 전진을 위한 것'으로, 노스탤지어는 미래로 향하는 디딤돌이자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더욱 단단한 한 걸음을 내딛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. 먼 미래에는 이 순간마저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하며, 세계(世界)에서의 숨을 내뱉어본다.

글. 주혜린